Ⅰ. 표준특허의 FRAND 실시료 판결: 미국, 독일, 영국의 사정
표준특허의 실시권에서 법원이 실시료 금액을 산정한 것은 2013년 미국 워싱턴 서부 연방 지법의 Motorola v. Microsoft 판결이 처음이니 역사는 매우 일천하다. 그렇지만 금액이 엄청나게 크고, 한국의 주종산업이며, 21세기를 이끌어갈 정보통신 산업에의 영향이 심대한 사항이라 지재권 법률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미국은 이미 1970년의 Georgia-Pacific 판결(SDNY, 1970)을 통하여 특허권 실시계약 대가의 법리를 정립하였는데, 이에 기초하여 실시료 금액을 법원이 산정하는 판결을 잇달아 선고하면서 FRAND 실시료 법리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 구체적 산정방법에 있어서 재판 대상인 실시권 허여 사건의 당사자와 ‘유사한 상황 (similarly situated)’에서 체결된 실시권 계약을 기준으로 실시료를 산정해 왔다. 2018년 중부 캘리포니아 연방 지법에서 유사한 상황의 선례를 찾기 어렵다고 하면서 특허권자가 표준 채택 이전에 공언한 총실시료를 상한으로 하향식 접근법으로 판사가 실시료를 산정한 TCL v. Ericsson 판결이 새로운 산정방법을 시도하여 주목을 끌었으나, 항소법원에서 배심 재판권 위배로 파기되었다. (미국에서 정착되지 못한 하향식 접근법에 의한 실시료 산정을 전제로 한 FRAND 분쟁 해결 절차를 EU 집행위가 제안하여 유럽의회에서 심의 중이다. 본지 2024. 8. 5. 자, 1073호 제7면 참조).
독일은 법원이 나서서 실시료를 결정하여 특허분쟁을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유럽사법재판소(CJEU) 2015년 Huawei v. ZTE 판결에 기초하여 특허권자가 실시자를 상대로 신청한 침해금지 청구가 공정거래법상 권리남용이 되는지를 살펴 침해금지 (가)처분을 인용할 것인지는 것에 머물고 있을 뿐, 나머지는 당사자 합의에 미루고 있어 실시료 산정 법리는 안갯속에 있다. 2020년에는 특허권자가 개별국이 아닌 전 세계를 범위로 실시권 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Sisvel v. Haier)고 하였고, 긴 가치사슬을 가진 자동차 산업에서 어느 단계에서 특허권을 행사할 것인지는 특허권자가 선택할 수 있다(Nokia v. Daimler)는 2건의 판결을 내렸다.
영국에서는 2017년 Unwired Planet 판결에서 세계 수십 개 국가에 등록된 특허권 실시료를 결정하는 재판관할권을 영국 법원이 가진다고 판결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는데,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지지(2020)되어 표준특허 국제적 forum shopping과 소송 금지명령 광풍을 일으켰다. 또한, 표준특허 재판에서 관할의 이익을 양보하고 싶지 않은 중 국이 지식재산 대법원 설립을 서두르게 했다. 영국법원이 올 7월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판결을 내려서 이에 살펴본다.
Ⅱ. 영국 항소법원의 Inter Digital v Lenovo 판결
A. 사건의 개요
무선 통신 분야의 NPE인 미국의 Inter Digital Corporation(IDC)은 삼성, LG, 애플을 포함한 20개 업체와 먼저 실시료 금액에 합의한 이후, 실시료 지불을 거절하고 있는 중 국의 Lenovo를 피고로 하여 실시료 금액을 산정하여 달라는 소송을 영국 법원에 제기하여 2023. 3. 16. 1심 판결을 받았다. 1심 법원(High Court)은 2007. 1. 1.부터 기산하여 총 1억 3870만 달러가 합리적 실시료라고 판결하였다. 원고 IDC의 표준특허를 구현하는 통신 칩을 탑재하는 무선통신용 휴대전화 세계 시장에서 피고 Lenovo는 시장점유율 9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법원은 점유율 10위인 LG가 지불한 실시료 금액을 기준 삼아 (즉 comparable licence로 선정하여) 피고의 실시료를 산정한 것이다.
항소법원은 2024. 7. 12 지불금액을 1억 7830만 달러로 28.5% 증액한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에서의 쟁점은 상향식 실시료 산정의 기준이 되는 ‘비교기준 실시계약’의 선정 방법, 비교 라이선스를 분석하여 실시료 요율을 추출(unpacking)하는 방법, 2G, 3G, 4G 등 기술의 구성비율, 실시권 허여 지역의 차이 등의 요소를 감안하여 실시료 요율을 ‘조정’(adjust)하는 방법 등 여러 쟁점이 다투어졌는데,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는 다른 기회에 살펴보기로 하고, 이하에서는 실시료 지불기간의 기산점과 소멸시효 적용 여부에 한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B. 피고의 주장
Lenovo는 1심 법원이 실시권 계약일로부터 역산하여 영국의 손해배상 소멸시효인 6년 (Limitation Act 1980 Section 2) 이전의 기간에 대해서도 실시료를 산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항소이유를 제시하였다.
ⅰ) 법적 안정성 – 영국의 시효법은 물론, 본 사건의 표준특허가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법적 안정성을 위하여 소멸시효를 적용하고 있다.
ⅱ) 권리 불행사는 원고 책임 – 소멸시효가 달성되기 이전에 원고가 제소를 하면 시효의 진행이 중단되는데, 이를 게을리한 원고가 권리 불행사 책임을 져야 한다.
ⅲ) 시효의 중단, 정지 없었음 – 원고와 피고가 실시 조건에 합의할 목적으로 협상을 진행하여 왔으나, 그로 인하여 소멸시효가 중단 되가나 정지되지 아니하였다.
ⅳ) 소멸시효는 본안 청구 인용 여부와 무관 – 실시료 금액 산정을 청구한 원고의 본안 청구가 인용되었다 하더라도 시효 중단 여부는 이와 독립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ⅴ) 종전의 판결에서는 소멸시효 적용 – 그동안 영국 법원은 외국특허법이 적용되는 사건에서는 외국의 소멸 시효를 적용해 왔다.
피고는 또한 소멸시효 적용이 표준특허 실시권 협상에서의 실무 관행이며,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a) 실시권 협상 기간이 장기화되어도 표준 특허권자가 과거 판매분에 대해 기한 제한 없이 모두 과거분 실시료를 받아낼 수 있게 되면, 특허권자가 실시권 협상을 초기에 마쳐야 할 이유가 없어지므로 협상이 장기화된다.
b) 협상기간 장기화에 따른 상대적 불이익을 피하기 위하여 표준특허 실시자는 소멸시효가 인정되는 다른 나라의 법원을 찾아 실시료 결정 판결을 청구하는 forum shopping이 증가할 것이다.
Ⅲ. 영국 법원의 판단과 평가– 실시 첫날부터 실시료 내야하고, 소멸시효 적용 없음
A. ‘자발적’ 실시권자는 버티기(hold-out) 하지 않는다.
표준 특허 실시권 협상에서 특허권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협상조건을 고집하는 것을 hold-up이라 하고, 반대로 실시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고집하는 것을 hold-out (또는 reverse hold-up)이라 하는데, 법이 상정하는 자발적 특허권자와 자발적 실시자는 이러한 책동을 부리지 않고 협상 완결을 위해 협력하는 모습이라고 판시하였다.
표준 특허 실시료 협상에서 그 동안 특허권자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위험을 경계하고 이의 예방을 위해 고심하던 과거의 판결들과 달리, 이번 판결은 협상에 임하는 실시자 의무를 강조하였다. 초기의 표준 특허권자들은 특정 산업구조론에서 말하는 수직 통합을 갖춘 강력한 시장 지배자들로서 경쟁 업체의 시장 진입을 방해하기 위해 특허를 무기화하는 형태가 많았던데 비하여, 근래에는 특허권 외에 이렇다 할 강제수단이 없는 NPE가 특허권자인 경우에 많은데 이 경우 실시자의 성실협상 의무를 강조함으로써 양측의 협상력의 균형을 유지한 점이 눈에 띈다.
B. FRAND 실시권 계약에는 소멸 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
특허침해 시점으로부터 6년을 넘으면 합의를 하루 늦출 때 마다 실시료 금액의 하루 분이 줄어들어 실시자에게 이익이 되므로 이를 방지하도록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Hold-out 으로 인한 협상지연의 유인을 제거하여 조기 타결을 유도한다는 목적이다.
C. 실시료 요율 부풀리기 시정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수취가 불가능한 과거 실시료 수익을 보전하기 위하여 특허권자가명목상 실시료 요율을 부풀려 제시하는 실무가 있었는데, 과거 실시료도 모두 받을 수 있게 되면 왜곡된 실시료 계산법을 바로 잡을 수 있게 된다.
Ⅳ. 전망
A. 이번 판결에서 상정하는 특허권자와 실시자는 ‘자발적’이고 선의의 자세로 hold-up과 hold-out 없이 FRAND 실시권 허락 조건에 합의하기 위해 상호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행동하는 실시자는 본인이 사용하는 기술이 특허로 보호되고 있는 기술이라는 것과 특허권리자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으며 실시권을 허여 받기 위해 협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허 실시 첫날부터 적정한 실시료 금액을 회계 처리에 반영하여 실시권 계약 체결에 대비하는 준비를 할 것이라고 영국 법원은 판단하였다. 이것은 기술표준의 제정과 사용에 참여하는 업체들의 이상적인 모습이긴 한데 실제 지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협상의 모습과 괴리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표준특허의 실시 협상 당사자 모델이 무리 없이 적용 될 것인지는 지켜 보아야 할 것이다.
B. 한편 본 사건은 특허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 아니라서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 청구라고 영국 법원이 판단하였는데, 외국의 법원들도 같은 법리로 판단을 내릴지 의문이 있다. 소멸시효 완성의 법률적 효과에 대해 상대적 소멸설이 아니라 절대적 소멸설을 취하는 법 체계에서는 채권이 원시적으로 소멸되는 것이므로, 확인의 소라고 하여도 피고의 지불책임의 바탕이 되는 되는 특허침해 손해배상 채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법체계에서도 이번 판결과 같은 결론이 내려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앞으로 다른 나라의 판단을 기다려 보아야 할 것이다.
http://kpaanews.or.kr/news/view.html?section=86&category=88&item=&no=6343target="_blank"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