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려면, 모두가 들을 때까지 말해야 해?”
“응 네가 진정으로 원한다면.”
“말할 권리와 듣기 싫은 말에 귀를 막을 권리 중에는 무엇이 더 우선시돼?”
“당연히 귀를 막을 권리지. 섹스할 권리보다 섹스하지 않은 권리가 우선하는것과 같이.”
우영우는 세속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전형적인 오락 드라마다. 서울대 수석, 서울대 로스쿨 수석, 변호사시험 수석, 빅로펌 재직, 미남과의 연애, 국내 탑로펌 대표의 숨겨진 딸, 천재적인 기억력을 가진 주인공. 그러니, 이 드라마는 잘팔린다.
동시에,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회정의를 청자에게 주장한다. 그 가장 큰 편린은 장애인과 비장애인를, 장애의 경도에 따라 ‘그나마 편한 보호자’와 ‘더 불편한 보호자를’, 그리고 대형로펌을 쓸수 있는자와 아닌 자, 그 중에 돈을 더 쓸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여성주의를 논하는 사람과 이에 무감각한 사람을 구분지어 대비한다. 단지 비장애인을, 대형 로펌 소속인을, 꼼수부려 법정에서 승소하고자 하는 사람을 힐난하지만은 않지만, 오히려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작가가 그리는 이상향을 보여주고는 하지만 결국 메시지는 같다.
“그러니, 봐. 저 우영우가 변호사로서 사회정의 실현에 대해 고민하면서 그 선한 의지를 이어가는 모습을. 너는 어때?”
나는 우영우 작가 논란이 있었을 때, 연관검색어가 “우영우 페미” 로 간단히 정리될줄은 몰랐다. 언론고시를 통과했다는 기자양반들은 우영우에 페미묻었다는 말을 서슴없이 옮겨적는다. 한 서울대 대숲의 사용자가 지적한 대로, 이 드라마는 앞과 뒤가 다르다. 글을 송곳삼아 도덕적 우월감을 푹푹 찌르기 위한 대본들의 범벅일지도 모른다만, 나는 이미 저 방법이 구닥다리라고도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페미’라는 단어를 멸칭으로 쓴다. 2018년도에 ‘퀴퍼’라는 단어에 표정이 구겨졌던 많은 사람들처럼. 페미니즘이 멸칭이 된 데에 여성주의 진영의 잘못이 큰지 대중의 곡해가 큰지를 논하려면 지면이 짧지만, 결국 2022년의 결과는 이정도의 연출과 메시지에도 대중들은 굉장히 민감해졌고, 강한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구한말즈음, 혹은 그이후 “계몽소설”이라는 분야가 있었다. 본인의 사상을 녹이고 주장하는 부류의 글들. 군사정권 시절에는 그 사상이 민족주의와 전체주의로 바뀌었고, 눈이 트인 사람들은 이들을 조롱했다. 우영우는 계몽소설적인 성향이 명백하면서도, 농도는 얕다. 식초와 이온음료 정도의 급 차이라고 느껴진다.
이온음료에 인상이 구겨지는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가지는 “도덕적 우월감으로 사람찌르기를 경계하는 것”에 대한 염세가 같잖다. 네가 들을권리보다 듣지 않을 권리가 큰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이왕 오락영화로 드라마를 다 봤는데, 한번 생각이야 해보는게 어때?
추천 0 비추천 0
생각할 거리가 있는 드라마네요 우영우..
전 개인적으로 그 나무 있는 동네 에피소드가 좋았습니다..
글을 잘쓰시네요
[글쓴이] @2 감사합니다.
퇴고없이 쓴 글이라 다시보니 비문 범벅이네요. 내 답안지는 이꼬라지 안나도록 연습해야겠어요.